우리 산하 350

개태사(開泰寺)

개태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고려전기 제1대 태조 왕건이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승 기념으로 세운 사찰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아낸 상징적 장소인 왕건의 숙영지에 건립되었다. 고려시대 말까지 거찰의 규모를 유지했으나 왜구의 약탈과 방화로 급격히 쇠퇴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폐사되었다가 1934년에 중창되었다. 개태사 북쪽의 개태사지는 왕건 사후 고려 광종대에 창건 또는 중수된 사찰 터이다. 개태사 마당의 오층석탑은 개태사지에서 옮겨온 것이고 개태사지의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 산하 2024.07.27

예천 장안사

예천군 용궁면 비룡산에 있는 장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이 창건하였다고 하고, 예천군지에서는 고려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하며 정확한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의 기록만이 전한다. 1627년(인조 5)부터 1896년까지 범종각, 향로전, 법당 및 요사채, 산령각 등을 수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응향전, 승방, 마룻집이 있고, 뒤편 언덕에는 산령각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조선 말기에 지어진 건물이며, 전각 내에는 목조 아미타삼존불과 3점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나 모두 최근작이다. 그러나 산령각에 봉안된 산신탱화는 1812년(순조 12)에 조성한 것으로 확실한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우리 산하 2024.06.04

예천 회룡포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일대에 있는 마을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건너편에 장안사(長安寺)와 마을을 볼 수 있는 회룡전망대(회룡대)가 있다. 현재 인구 수는 10명 가량이며 농업이 주 산업이다. 마을 주변에 내성천을 건널 수 있는 뿅뿅다리라 불리는 철제 다리가 있다.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으나 같은 도의 의성군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지금의 회룡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우리 산하 2024.06.04

예천 초간정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고쳐 지었지만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려 1642년(광해군 2)에 후손 권봉의가 다시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정자는 용문면 원류마을 앞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반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우리 산하 2024.06.04

예천 용문사

용문사(龍門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소속이며 870년에 창건되었다.1173년에 지어진 대장전은 1984년에 발생한 화재 때 재해를 피한 건물이기도 하다. 또 대장전 안의 윤장대(경전을 놓고 돌려 보는 대)는 167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윤장대 중에서는 최고(最古)이다. 그 외에 회전문과 사천왕상, 괘불탱화, 조선 세조가 내린 교지 등의 문화재가 있다.용문사 사찰 처마에는 꿀벌집이 있나봅니다. 꿀이 흐르는 사찰

우리 산하 202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