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

생태적 삶의 속도

Green Guardian 2010. 7. 4. 21:42

 ◇생체시계란 무엇인가

 

 

 18세기 초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마랑은 미모사를 키우다가 신기한 일을 발견했다. 창가에 둔 미모사가 늘 같은 시간에 태양을 향해 잎을 여는 것이었다. 빛의 영향일까? 마랑은 미모사를 캄캄한 방안에 갖다 놓았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잎을 열고 저녁에는 잎을 닫았다. 1729년에 그는 파리 과학아카데미에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처럼 식물도 밤낮을 느끼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것 같다.” 마랑의 생체시계 발견은 다른 식물에게서도 관찰되었고, 동물에서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연구 되었다.

 인간의 몸에도 생체 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했던 실험을 통해서였다. 사람을 어두운 지하창고에 살게 하고 행동을 조사한 결과, 밤낮을 모르는데도 거의 25시간 간격으로 잠을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한 것이다.

 밤낮과 상관없이 우리 몸에서는 자발적으로 생체시계가 작동해 우리 몸을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체시계는 달의 공전주기와 비슷한 24.5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앞당겨진다고 한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두 눈의 뒤쪽 뇌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시신경 교차상핵(SCN)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생체시계는 밤에는 숙면을 취하게 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낮에는 중단시키는데, 그밖에도 체온, 호르몬 분비량, 혈압, 심장박동수, 호흡수 등 바이오리듬을 조절한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타고난 유전자에 따라 사람마다 약간씩 다른데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이른바 ‘저녁형 인간’에게 왜 일찍 일어나지 못하느냐고 야단치는 것은 곱슬머리에게 왜 너는 곱슬머리가 되었느냐고 야단치는 것과 똑같이 유전적 체질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소양인이나 태양인 같은 ‘양인’은 몸에 양기가 많은 체질로 ‘아침형 인간’에 속한다고 한다. 이들은 양기의 활동이 시작되는 새벽부터 활기에 넘친다. 반대로 소음인이나 태음인은 ‘저녁형 인간’으로 분류되어 아침잠이 많고 일을 시작하더라도 오전 중에는 멍한 상태로 되기 쉽다고 하니 직원을 많이 거느린 사장님들은 참고할 사항이다.

 

 

◇생태적인 삶의 속도

 생태적 삶이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체시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햇빛이 동창에 비치면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집에 들어가 밥 먹고 자는 것이 생태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태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방학을 맞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의 생활주기를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후부터 초저녁까지에는 친구들과 놀다가 밤 12시 쯤 집에 들어오면 새벽 3~4시 까지 컴퓨터에 붙박혀서 영화보고 인터넷 쇼핑하고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하고 블로그 꾸미고 다른 사람 미니홈피 방문하고 정말로 바쁘게 지낸다. 당연히 일어나는 시간은 자연적으로 순연되어 낮 12시가 기상시간이 된다. 청소년들이 햇빛을 적게 받으며 생체시계와 어긋나게 생활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생리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조급함, 우울증, 불면증, 식욕감퇴 등 여러 가지 증상은 모두 생체시계에 어긋나 생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삶 역시 생태적인 삶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자는 먹이를 사냥할 때가 아니면 달리지 않으며, 개미가 부지런히 일만 하는 것 같아도 밤에는 철저히 쉰다. 사람만이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밥먹는 시간을 줄이고, 입시를 위하여 승진을 위하여 부자가 되기 위하여,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열심히 뛴다. 그러나 잠자야 할 때 잠자지 않고, 쉬어야 할 때 쉬지 않고 젊어서부터 줄곧 달리다 보면 40, 50대에 건강을 해치게 된다. 주변에서 보면 젊어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고 자식들 잘 키웠는데 이제 살 만 하니 그만 병이 나서 죽는 안타까운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인류 최초의 환경주의자인 노자가 가르친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생태적인 삶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눈에 띄지 않게 제때 제때에 서서히 한다는 뜻이다. 봄에 물이 오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무위자연을 알 수 있다. 새순이 어느 순간 쑥 자라나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조금씩 자라난다. 가을에 단풍이 질 때에도 서서히 색깔이 변해간다. 학생이 매일 매일 조금씩 공부해 두면 시험날자가 닥쳐서 벼락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국악가수 장사익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노래는 박자에 얽매이지 않으며, 흥얼거리듯 느린 가락이 유연하게 이어진다. 가끔 고함은 지르지만 속도가 빨라지는 법이 없다. 그의 노래에서 팔분음표 길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삶이 바빠지는 것은 대부분 욕심 때문이다. 생태적인 삶이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장사익의 노래 속도처럼 느릿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이상훈

수원대학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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