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육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여 이해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교육방법을 …학생 참여 중심의 협력학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세상의 일 중에서 가장 긴요하고 위대한 것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지식과 교양, 품성 등을 지니고 인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또한 국가경영에 초석이 되기 때문에 교육입국(敎育立國)이라는 말이 결코 빈 말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교육이 중차대하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각종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지, 냉정하게 판단할 때라고 보인다. 사실 교육문제는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교육의 본질에서는 크게 변화가 없다고 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자와 학생, 교육시스템, 교육환경 등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못지않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혁신과 혁명 등 대대적인 전환을 주창하는 바는 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방식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교육방식은 주입식에 크게 의존되어 왔다. 그 결과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이 없는 암기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며,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실정이 됐다. 다시 말해서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는 교육시스템을 고수해왔던 것이다. 지금은 분명 ‘창조’의 시대다. ‘창조’는 새로운 문화적 물질적 가치를 이룩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처음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개인과 나라의 운명이 크게 달라진다. 남의 것을 ‘모방’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세계 일류는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교육도 창조적, 창의적 인물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이것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외워서 ‘아는 것’은 응용의 한계가 좁아서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항상 통합적이며, 많은 경험의 방식을 결합하여 상상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다. ‘창조’라는 것은 ‘상상’을 현실화시켜 ‘실체’의 단계로 옮기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관념은 창조적 상상을 통해서 현실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적인 상상력을 키울 것인가. 여기에는 ‘루드번스타인’이 저술한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에는 ‘다빈치’에서 ‘파인만’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어떻게 독특하게 생각하여 창조적 발상을 끄집어내어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였는가에 대한 실화가 실려 있다. 요컨대 이들은 ‘창조적으로 생각하기’의 달인이었다. 우리의 교육은 이제는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여 이해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교육방법을 발표와 토론, 토의를 통한 학생 참여 중심의 협력학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른바 ‘거꾸로 교실(플립트 러닝, Flipped learning)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거꾸로교실은 일부 고등학교에서도 실시되고 있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수업시간이면 졸던 학생들이 발표와 토론에 적극 참여하여 신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성적 또한 쑥쑥 올라가고 있다. 최근 카이스트에서도 ‘강의실에서 강의를 쫓아낸 수업’으로 평가되는 ‘에듀케이션 3.0’이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것 역시 ‘거꾸로 교실’의 또 다른 이름이다. 교수의 강의는 동영상으로 온라인에 미리 올리고, 오프라인 수업시간은 토론과 질의응답, 협력과제로 진행되는 학생중심의 수업이다. ‘거꾸로교실’의 지속적인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교육자에게 달렸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는 용기부터 가져야 한다. 학생들은 신바람이 나서 야단인데, 정작 교수나 교사가 강의가 없어진 것에 익숙치 못하고 망설인다면 어찌 되겠는가. 물론 이 제도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중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임에는 틀림이 없다. ‘논어’에 보면 “분발하지 않으면, 계도하지 않는다. 비비하지 않으면 발표케 하지 않는다.(不憤不啓, 不?不發) 일우를 들어 주는데 삼우로써 반응하지 않으면, 반복하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이것은 공자가 얼마나 위대한 교육자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학생이 마음으로 통달하고자 하나 잘되지 않아서 바둥거리며 애태울 때, 비로소 계발하여 지도함으로써 이해의 문을 열어주었다. 또 마음속으로 이해하면서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여 더듬거리고 있을 때, 비로소 발표케 하여 말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사물의 네 모퉁이 가운데 하나를 가르쳐 주었는데, 나머지 셋을 스스로가 유추해내지 못하면, 똑같은 가르침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공자가 가르치는 방식은 공부는 어디까지나 학생 스스로가 생각하여 깨우쳐 나가야 한다는 학생 중심의 교육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에는 학생 중심의 창의적인 수업을 가로막는 먹구름이 너무나 많다. 요컨대 우리 교육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책가방을 메고 처음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대학만 바라보고 매진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을 마다하지 않는다. 둘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취업의 문을 보고 돌진하는 것이다. 취업률은 경제의 활기에 크게 좌우되는데도 온갖 스펙을 쌓는다고 야단이다. 이 같은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학생 스스로가 창의력을 키워나갈 수 있겠는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거꾸로 교실’ 세대에게 큰 기대를 걸어본다. ·이수오 창원대학교 前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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